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의 감독이자 배우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마츠시게 유타카.
잠시 시간을 내 그와 함께 부산의 오래된 맨션과 작은 시장, 골목을 걸으며 꼿꼿하고 우아한 걸음걸음을 기록했다.
찰나의 사이 해운대를 비추던 해는 기울었고, 아늑한 밤이 찾아왔다.
반갑습니다. 감독으로 뵙게 되었네요.(웃음)
저 역시 감독이 돼 작품에 대해 인터뷰를 하는 상황이 상당히 신선하고, 기쁩니다. 최선을 다해 답해보겠습니다.
어제와 오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상영 후 관객들을 만났습니다. 감독으로서 느낀 감회가 궁금합니다.
<고독한 미식가>는 12년 동안 방영해온 TV 시리즈입니다. 이 드라마가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은 위기감이 들던 시기가 있었어요. 영화로 모습을 바꿔 보다 많은 젊은 관객과 만난다면 TV 시리즈로도 계속 잘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영화화가 시작된 거죠. 그런데 어제 첫 상영에 모인 수많은 젊은 관객들을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아이돌 스타가 아니고, 더군다나 이 이야기에 러브 스토리가 담긴 것도 아닌데, 많은 젊은 분들이 흥미를 가지고 영화를 보고, 깊이 있는 질문을 해주어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의 감독, 각본, 주연을 맡았다는 소식에 오랜시간 이 시리즈를 사랑하는 이들이 크게 환호했죠. 영화를 이끌 적합한 감독을 찾지 못해 고민하다 직접 감독으로 나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감독직을 맡게 되었나요?
이전에 봉준호 감독의 영화 <쉐이킹 도쿄>(옴니버스영화 <도쿄!(TOKYO!)>에 포함된 단편)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인연으로 이 영화의 감독을 부탁드린 적이 있어요. 긴 시리즈의 이야기를 하나의 보자기로 감싸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스케줄이 맞지 않아 함께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후쿠오카에 있을 때 그 소식을 들었는데, 문득 “내가 해볼까”라는 말을 입 밖에 냈죠. 혼잣말로.
작은 혼잣말에서 시작된 것이군요.
일본에서는 “입 밖으로 말을 꺼내면 현실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입 밖으로 꺼냈다는 자체가 각오인 것이죠. 구로사와 기요시, 미이케 다카시, 제제 다카히사 등 좋아하는 여러 감독을 떠올렸지만, 그분들 역시 거절하면 제 선택지가 좁아질 것 같았습니다. 괴로워질 일을 만드느니 내가 해볼까 하는 말이 입에서 툭 나온 겁니다.
감독을 하기로 결정한 이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연출적 요소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감독으로서 기존 시리즈와 영화 판의 차이를 고려해 연출한 부분이 있나요?
일단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 이야기와 장소를 찾아야 했습니다. 영화적으로 이야기를 확장하기 위해 해외로 향했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이의 기세로 일단 프랑스에 간 거죠.(웃음) 이후 한국으로 장소 헌팅을 갔을 때 이야기가 구체화됐습니다. 여러 도시를 다니며 이야기가 쌓인 거죠. 이야기와 장소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가 배우이기 때문에 신뢰하는 배우 한 명 한 명에게 연락했습니다. 연기에 한해서는 별도의 연출이 필요 없는 분들이죠. 그들의 연기를 어떻게 담는지가 중요하기에 앵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가능하면 컷을 나누지 않고,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를 천천히 담고자 했습니다.
감독은 넓은 시야를 가지고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죠. 이 임무가 어렵지는 않으셨습니까?
배우로 연기하면서 영화제작 과정을 오랜 세월 지켜봐왔잖아요. 연기하면서 ‘이런 방식으로 해도 재미있겠는데?’, ‘나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질문이 제 안에 축적돼 있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감독은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잖아요. 연출가이자 영화 감독인 니나가와 유키오 선생에게 연극 연출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연출가는 위에서 전체를 내려다보는 새의 눈과 땅에서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는 벌레의 눈을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두 가지 시야가 공존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셨죠. 감독의 역할을 하면서 그 말을 내내 되새겼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이 힘들거나 괴롭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즐겁고 재미있는 여정이었습니다.
2018년에 방영한 <고독한 미식가> 시즌 7 때 서울을 방문했었죠. 서울 편 방영 이후 작품에 소개된 식당들이 큰 화제를 일으켰습니다. 이번 영화에서는 거제도의 구조라가 배경이 되지요. 구조라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한국적 요소를 영화에 도입한 계기가 있었는지요?
제가 나고 자란 곳이 후쿠오카입니다. 부산의 건너편 섬이라 할 만한 곳이죠. 어릴 때 AM 라디오 주파수를 잘 맞추면 한국 라디오 방송이 들렸어요. 한국 음악이나 광고를 들었는데 무척 인상적이었죠. 가끔 해변가에 (한국에서 보낸) 편지가 담긴 유리병이 흘러오곤 했어요. 부산은 제게 심리적으로 도쿄보다 가까운 곳이었죠. 한국에 대한 제 뜨거운 열의가 영화에서 결실을 맺은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영화를 제작하던 시기가 팬데믹이 한창이던 때였습니다. 다른 나라를 가지 못하던 때에 해외에 가 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습니다. 아주 먼 파리와 아주 가까운 한국을 영화 속에 응축해 관객들이 일종의 친근감을 느끼길 바랐습니다. 나아가 팬데믹으로 상황이 어려워진 식당들이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영화에 담고 싶었습니다.
구조라에서는 황태해장국을 맛봤습니다. 영화에서는 “위를 달래주는 느낌”이라고 표현했죠. 실제 느낌은 어땠나요?
일본과 한국 모두 국물 요리가 많지 않습니까. 돼지 뼈나 닭 뼈는 일본 국물 요리에도 많이 사용하니 일본에서는 절대로 쓰지 않는 재료가 무엇이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말린 명태인 황태는 일본에서 한 번도 요리에 쓴 적이 없죠. 여러 곳을 찾아다니다 황태해장국이 우리가 생각하는 음식에 가장 가까운 국물 요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황태해장국을 찾기 위해 부산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쭉 여행하며 내려갔는데 이 여정에서 구조라의 ‘진이네 식당’을 찾게 되었습니다.
황태해장국의 여운을 품고 도쿄로 돌아와 오다기리 조 배우가 운영하는 라멘집으로 향합니다. 드라마와 영화의 큰 차이 중 하나가 식당 내에 픽션의 요소를 더했다는 것이죠. 어떻게 식당 운영자나 요리 등에 극적 요소를 더하게 되었나요?
도쿄 긴자에 북엇국만 파는 ‘타라짱’이라는 식당이 있습니다. 스태프들이 추천해서 갔는데 아주 맛있더군요. 이제는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식당이 된 곳이에요. 꼭 가보세요.(웃음) ‘산세리테’라는 오다기리 조가 등장하는 라멘집 장면을 타라짱에서 촬영했습니다.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고 비참한 상황에 처한 가게를 아름답고 멋지게 재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당시에 실제로 제가 갖고 있던 바람이기도 했고요. 조금 덧붙이자면, 식당 헌팅을 다닐 때 일본에서 굉장히 유명한 푸드 코디네이터인 이이지마 나미 씨와 동행했어요. 지금까지 드라마에서는 실제 그 식당의 요리를 선보였다면 영화를 위해 독자적으로 국물을 만들었습니다. 이이지마 나미 씨가 부산에서 아주 많은 양의 황태를 일본으로 가지고 와서 실제 맛을 구현했습니다.
극 중 역할인 고로 상은 영화 상영 시간 내내 ‘궁극의 국물’을 찾으려 애씁니다. 왜 요리의 다른 요소가 아닌 국물이었나요? 본인에게 국물은 어떤 존재인가요?
국물 요리는 다른 요리와 달리 눈에 보이던 재료가 최종 결과물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물을 먹을 때 우리는 ‘이 맛은 무엇으로 냈을까, 무엇을 넣었을까, 이 안에 뭔가가 숨겨져 있는데?’ 하고 그 재료를 추측하고 상상하며 맛을 보게 되죠. 많은 재료가 녹아 융합된 것이 국물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상상의 과정이 제게 가장 유쾌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특징은 영화와도 상당히 유사합니다. 우리가 어떤 영화를 볼 때 누군가 옆에서 해설을 해주지는 않잖아요. 보는 동안 ‘이 인물은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됐을까’ 하고 상상하게 됩니다. 드러나는 이야기 뒤에 숨겨진 인물의 배경이나 사건 등을 생각하면서 감상하게 되는 것이죠. 이번 영화에서도 오다기리 조와 우치다 유키 두 부부의 이야기가 세세하게 나오지는 않잖아요. 그렇지만 영화를 보며 ‘저 부부가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됐을까’ 하고 추측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이후 등장하는 국물과 아내의 얼굴, 이런 것들이 마지막에는 각별해지죠. 국물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깊이가 있는 요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영화에서도 ‘궁극의 수프, 궁극의 국물 찾기’라는 표현을 쓰게 됐습니다. 궁극의 수프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각자 다를 겁니다. 각자의 기억과 추억 속에 남아 있는 국물 맛이 궁극의 수프가 아닐까요.
배우일 때와 감독이 된 지금을 비교했을 때, ‘좋은 영화’에 대한 생각이 변화했다고 느끼십니까?
좋은 영화, 좋은 이야기에 대한 생각 자체는 굉장히 확고합니다. 영화는 도망칠 수 없는 극장이라는 장소 안 어둠 속에서 보여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를 만들 때는 아주 큰 각오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극장에 들어와 앉은 이상 재미없다고 중간에 쉽게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극장이라는 장소의 특성을 늘 염두에 두는 편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정보량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관객이 보다 많은 상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등장인물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관객이 상상하고 추측하도록 해야지, 이를 정보와 설명으로 보여주는 건 좋은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서 무수한 상상이 오갔을 때 극장이라는 곳이 가장 풍요로운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생각은 연기를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되도록 적은 대사로 상상할 여지를 듬뿍 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이번 영화에 유재명 배우가 나오지만, 언어가 달라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을 수 없잖아요. 그럼에도 음식을 앞에 두고 있기에 말은 통하지 않아도 정서를 주고받을 수 있는 거죠. 개인적으로도 참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이런 것들이 영화가 지닌 큰 즐거움이라고 봅니다. 이 생각은 배우를 할 때도, 감독을 할 때도 바뀌지 않은 신념입니다.
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는 내년 초에 한국에 정식 개봉할 예정이지요. 내년에도 한국에 오실 예정이지요?
물론입니다. 부산에서 많은 분이 이 작품을 좋아해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가급적 많은 분과 이 영화를 나눌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 인터뷰도 많이 할 생각입니다. 잘 부탁합니다.(웃음)